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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이 마지막 포스팅이다.
역시 두집살림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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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럽시다. 그럽디다.
갑자기 이런 말이 생각나 적어본다.
한글은 글은 말과 참 달라.
언젠가도
'남루하다'라는 단어를 쓰고 한참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다. 남루하다는 단어의 그 뜻과 달리 모양으로만 보면 참 예쁜데 말이지 그걸 쓰고 읽어보면 진짜로 '남루'한 느낌이 들어버린단 말야.
말은 늘상 내 입가로 떠돌며 들락거리는데 글은 문득 이렇게 낯설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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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에 대한 세계관이 흔들리는 요즘 보수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배우다. 상업 시설 개발에 관여하는 중인데 분양가를 시세보다 낮게 책정하는 걸 "보수적"으로 책정해서...라고 하더라. 말하자면 기대 이익을 내 편한 대로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불리하게 해석해서 기대치를 낮춘다는 걸 의미하는 듯. 점점 보수적이 되어가는 내 자신에 대한 깨달음과 제법 어울리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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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유난히 상을 좋아한다. 그것도 이왕이면 1등 상. 김연아 선수가 주니어 대회 우승을 넘어 세계대회(러시아 상트페테스부르크에서 열린 2006-2007 국제빙상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 결선 대회)에서 우승을 하자, 우리 국민들은 김연아 신드롬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을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박태환은 또 어떤가. 둘 다 어린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대견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두 선수에게 쏟고 있는 관심은 솔직히 지나친 감이 있다. 선수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두 선수가 뛰는 종목, 그 주변 환경에도 그만큼 폭넓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만 제 2의 김연아, 제 3의 박태환이 계속 나올 수 있을 텐데 말이다.
10월은 노벨상의 계절이다. 노벨 재단은 최근 홈페이지(http://nobelprize.org)에 '2007 노벨상 발표 순서'를 게재하고 10월8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9일 물리학상, 10일 화학상, 12일 평화상, 15일 경제학상을 차례로 발표한다고 밝혔다. 가장 흥미로운 문학상 발표일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10월 둘째 주 목요일에 발표해온 관행으로 볼 때 11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작년 이맘때의 뜨겁고도 우스웠던 해프닝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작년 2006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터키의 작가 오르한 파무크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선정 이유는 “그는 고향 이스탄불의 우울한 영혼을 추적하면서 문화의 충돌과 교차에 대한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해냈다”는 것이다. 파무크는 『내 이름은 빨강』,『눈』, 『하얀 성』 등 10여 편의 소설을 통해 이슬람 근본주의와 세속주의, 세계화와 지역주의, 서구문명과 동양문명, 신과 인간, 진보와 보수 등 ‘이질적인 문화의 갈등과 소통’ 문제를 소설로 형상화한 작가이다. 그의 소설 세계는 조국 터키의 지리적 특수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접점에 있는 터키는 동서양의 문화가 교류하는 중간 지대다. 터키의 위치와 역사는 파무크 의 소설을 설명하는 큰 열쇠이기도 하다. 한때는 시인을 꿈꿨던 파무크는 대학에서 건축 공부를 하다가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것을 글로 써봤는데, 그게 소설이라는 걸 알았다. 대학을 자퇴했고 전업 작가로 나섰고, 곧바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그는 2005년 터키의 국가정체성을 위협했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고발당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작가로 국제적 조명을 받기도 했다. 문학적 성취뿐만 아니라 작가의 정치적 입장 또한 중요한 배경이 되는 노벨문학상 선정에 있어, 그의 정치적 입장이나 동양권 작가에 대한 배려가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그가 오래 전부터 유럽 및 미국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매년 수상 후보자 명단에 올랐던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당시 그의 수상은 세계 문학계로부터 “받을 사람이 받았다”고 평가되는 분위기였다. 여기서 다른 장면 하나. 수상자 발표 몇 시간을 앞둔 2006년 10월 12일 오후. 경기도 안성, 고은 시인의 자택 앞에는 100여 명의 취재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잔치를 준비했다. 한국 문학, 나아가 문화계 전체의 '최대 경사'로 꼽힐 만한 고은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고은 시인은 2005년에도 유력한 후보자로 언급됐으며, 특히 2006년에는 북한 핵실험 발표로 한반도에 대한 외국의 관심이 집중돼 있어 수상에 대한 기대가 커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일은 또 한번의 해프닝이 되고 말았다. 연달아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우리나라 언론 일각에서는 고은 시인의 차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본다. 다만 파무크가 아시아권 작가로 분류되기 때문에 영어권 국가가 아닌 이상, 한 대륙에서 잇따라 수상자를 배출하는 건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 어린 예상도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고은 시인의 해외 진출이 시인의 국제 지명도나 해외 인맥과 같은 개인적 힘에 의존한 바가 크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런 그의 행로에 뜻밖의 경쟁자가 등장했으니, 바로 소설가 황석영이다. 황석영은 당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북한을 다녀온 덕에 오랫동안 해외를 떠돌다가 1993년 귀국, 바로 투옥되었다가 1998년에 석방되어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실주의의 진보적 핵심을 견지하면서도 다양한 형식 실험을 병행하는 그의 소설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황석영의 해외 나들이 또한 고은 시인 못지않게 잦아졌는데, 사석에서 마주친 두 사람이 서로의 해외 행보를 두고 ‘뼈 있는’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한다 하니,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노벨문학상의 수상이 명예로운 일임에는 틀림없겠지만, 해마다 수상을 기다리며 들썩일 우리 언론과 작가 본인들의 다소곳한 기다림은 부끄럽기만 하다. 고은 시인의 문학성에 대해 두말 하고 싶지 않고, 예전에 비해 날이 무뎌진 황석영의 필봉도 다그칠 마음은 없다. 우리 외무장관이 유엔 사무총장 자리를 얻어내는 것을 보면 대외적인 국력을 기준으로 볼 때 “받을 때가 되었다”는 웅성거림이 근거 없는 일은 아니겠지만, 이건 노벨정치학상이 아니지 않은가? 노벨상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들썩이는 건 본인에게도 얼마나 소모적인 고통인가? 두분 대작가께서는 부디 상에는 좀더 초연해지시고 본업에서 좀더 좋은 성과를 계속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건축계에서도 오랫동안 건축대전, 공간대상 등의 공모전을 통한 ‘상’의 후광이 결코 작지 않았다. 특히 학생이나 갓 사무소에 입사한 젊은 건축인들이 이런 상을 수상하게 되면 알게 모르게 능력을 인정받게 되어 취직을 한다거나 유학을 할 때도 상당한 인센티브를 얻곤 했었다. 물론 그 수상 과정에서도 뒷이야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요즘은 공모전 종류가 많아지고 해외 공모전에 출품하는 경우도 많아져 '수상‘을 위한 훨씬 넓어진 대신 수상자에 대한 주목도는 예전만 못한 듯 하다. 당장 설계를 한다는 건축인들의 수가 부쩍 줄었으니 그도 그럴 법하다. 뭐 결과로서 얻어지는 명예나 이득이 눈에 보일 때 그것에 몰두할 수 있는게 인지상정 아닌가. 학교에서도 예전처럼 학생들에게 공모전 출품을 독려하기도 어려운 것이, 갓 입학한 학생들도 어디서 누구에게 무엇을 들었는지 ‘설계 해서 먹고 살 수 있나요?’하고 당돌하게 물어오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깊게 들어가면 슬픈 이야기가 될 터이다. 요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상을 받기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수영장을 끊임없이 오가며 훈련하는 박태환이, 아이스링크에서 연신 넘어지며 스케이트 날을 다듬던 김연아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그토록 열심히 뛰었을까? 그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에, 더 좋은 기록을 내고 싶어서 힘들고 괴로운 훈련을 참아내었을 것이다. 김연아나 박태환 만큼은 아니지만, 세계 최고인 젊은이들은 또 있다. 2004년 비보이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영국의 ‘UK 챔피언쉽’, 비보이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독일의 ‘BOTY’에서 연달아 우승한 한국 비보이들이 그들이다. 원조격인 미국이나 우리보다 십여년 이상 앞선 일본 선수들을 누르고 첫 출전한 대회에서 단번에 우승을 거머쥐고 세계를 놀라게 한, 그러고선 스스로도 너무나 놀라버린 그들의 우승 비결은 그저 춤이 좋아서, 잠도 안자고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 피며 끊임없이 연습했던 것뿐이다. 그들은 여기 한국에서는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 없이 그저 행사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광대들처럼 불려다니지만, 유럽에 가면 공항에 현지인들이 태극기를 들고 마중나올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어 있다. 불과 스무살 남짓한 나이에 세계 최고가 된 '디 앤드(The End)'라는 닉네임의 비보이(김연아와 함께 모 은행 광고에 나온)가 보여주는,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며 마치 중력을 거부하는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는 파워 무브는 전 세계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동작이라고 한다.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자꾸 상 타령을 하자니 촌스럽긴 하지만, 안도 타다오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 상을 탄 것이 1995년의 일이다. 번역이 중요한 문학작품에 비하면 아무런 말 없이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건축은 세계인에게 어필하기가 훨씬 손쉬운 장르일 터이다. 과연 현 시점의 한국의 리딩 아키텍트들은 안도만큼, 혹은 안도를 뛰어넘는 성과를 이루어내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앞서 이야기했듯이, 정치적인 역학 관계를 고려하고, 주변을 의식하고 눈치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환경이 급변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나가야만 하는 오늘,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건축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노력할 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가 되는 순간이 어느 날 문득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
추석 내내 일하느라 짜증났다가 몇달 묵은 원고를 써버리고 급 방긋. 아.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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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근무하고 저녁엔 '권순분여사납치사건'을 봄 오늘 근무하고 저녁엔 '즐거운 인생'을 볼 계획 내일은 추석 준비 모레는 추석 행사 글피엔 다시 근무하고 저녁엔.... 아마 철야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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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주말에 집에서 쉬다. 엄밀히는 책 몇권 사러 잠깐 나갔다 오긴 했지만 낮잠도 자고.. 집엣밥을 먹으니 좀 살 것 같다.
작년에 책을 내고 막상 냈을 때는 별 반응이 없더니 만 일년이 넘은 요즘 갑자기 연락이 오는게 교보 덕인가 싶다.(책이 매대 맨앞에 갑자기 깔렸더라) 워낙 인기 없는 분야라 뭐 그렇다고 2쇄 3쇄를 찍는단 소식이 오는 것도 아니고 인세를 더 준다는 소식도 없고 말이지.
아무튼 이런저런 잡지사와 심지어 방송국까지 연락이 오는 거 보니 오호. 바쁠 때 늘 일들이 몰려다니드니만 이런 것도 몰려다니나 보다.
9월도 벌써 첫주를 보내고 다음주에 하나 그다음주에 하나 그다음다음주는 추석 그리고 시월첫주에 하나 여름 내 쏟아부었던 노력의 결과물들이 하나씩 나온다.
바쁘게 사니 좋다. 새삼.
-------------- 그러나 수금률(이렇게 쓰고 보니 일쑤 찍는 아지매같다. 큭)은 안습이다. 아, 계산하지 말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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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철야 및 포스팅중.
다했다.
아.
낼 아침에 봐도 지금 작업했던 것들이
다 멀쩡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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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트랜스포머 - 잔디밭을 지키기 위한 아들넘의 힘겨운 사투극. 별 셋 지구는 왜 외계에서 날아온 니들이 지키니? 아무 이유 없어!!! 8월 10일 라따뚜이 - 재미는 있었지만 쥐떼의 요리 장면은 너무해. 별 넷 그러나 역시 픽사! 8월 11일 모네 전시회 - 10000원 내고 짐짝 취급 당한 내가 바보지. 별 하나 뭐 좀 볼만한 그림이라도 갖다놓든가. 덕수궁이나 갈껄. 다이하드 4.0 - 노친네가 되어도 여전한 아빠와 똑닮은 툴툴대는 딸. 별 넷 통쾌한 액션을 위해 너무 착해주셨던 악당들 8월 17일 디워 - 내가 보기엔 그정도면 훌륭합디다. 별 셋 반. 근데 어느 용이 착한 용인지 어떻게들 알아본거야? 8월 24일 스타더스트 - 드니로 아저씨랑 미쉘 언니가 나오시는데 이정도는 되야...별 다섯. 역시 남자는 옷빨과 머릿빨.ㅋㅋ 너무 슬플 거 같아 못본 화려한 휴가 빼면 볼 만한 건 다 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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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상 속에서 현실을 보다 오늘은 관철루에서 죽엽청을 홀짝이다 개방대학 시절 절친했던 사형 한 분을 만났다 우중일배주라, 운치가 있구만 껄껄 사실 무림의 삼류대학 개방에서 만나 사년 간 소화자처럼 죽엽청만 마시며 취권을 배웠던 신세였지만 그도 나도 한땐, 소림대학의 견고한 나한진을 뚫기 위해 수십만냥 들여가며 무공과외도 했고 내공을 몇 갑자씩 증진시켜준다는 비급도 여러 권 읽었다 소림대학 입산해야 달마역근경도 배우고 일류 검객이 되어 출세도 하는 중원땅에서, 무림제일문 졸개들에게 쫓기며 터득한 경공술 따윈 아무 쓸모가 없다며 광소를 날리던 사형 그는 대학을 하산한 뒤 기껏 무협지를 쓰고 있었다 어제는 백명 죽이고 오늘은 고민 고민하다가 이백명 죽였어 죽엽청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그는 귀기어린 안광을 번득이며 전음입밀의 수법으로 말했다 사형은 아마도 하남의 혈겁에 대해 쓰는 것 같았다 마도의 패왕 광두일귀의 공수무극파천장에 칠공에 피를 쏟으며 죽어간 하남땅 수많은 백성들 허지만 사형, 소설은 현실의 복사가 아니잖소? 절제가..... 무슨 닭뼈다귀 같은 소리냐 무협소설은 무림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그뜻이 있어 내일도 모레도 애꿎은 자들 몇 백병 더 죽어야 내가 쓰는 무협지가 끝이 날지..... 말을 마치자 사형은 단전에 진기를 끌어모은 후 능공허도의 경공술로 섬전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비가 그치자 오늘도 관철루 부근에선 어김없이 무림제일문 무사들이 최루장풍 출수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협지 작가와의 대화-무림일기 2>, 유 하, 『무림일기』중에서 ‘지금 여기’에 대해서라면, 말하거나, 말하지 않거나. 잘 나가는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의 <무림일기> 연작을 읽으면, 서글픈 현실의 덫에서 천연덕스럽게 펄떡거리는 무협 용어들 때문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내공, 소림, 달마대사쯤이야 무협 안 읽어본 사람도 알 만 하겠지만, 전음입밀(남모르게 은밀히 대화하는 수법), 능공허도 정도를 알아들으려면 제법 내공이 필요할 터이다. 하기사 판타지와 무협을 오가는 이른바 퓨전 소설들까지 난무하는 요즘이니 그것도 기우에 불과한 지 모르겠다. 한국에 무협소설이 등장한 것은 1961년 무렵 김광주가 『정협지』나『비호』같은 작품을 편역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김광주의 둘째 아들이 『칼의 노래』를 써서 ‘더’ 유명해진 김훈이다. 이후 와룡생의 『군협지』, 『비룡』, 고룡의 『절대쌍교』, 진청운, 유잔양, 사마령 등의 작품이 계속 소개되었다. 그러나 수요가 많아지면 공급이 딸리는 법. 번역할 작품이 바닥나자 번역작가들이 창작과 번역을 섞기 시작했고, 이후 점점 실력 있는 국내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순수한 창작무협이 발전하게 된다. 80년대 초반에 사마달, 검궁인, 서효원, 금강, 야설록 등이 한국 무협의 전성기를 이끌다가, 일명 박스무협, 공장무협들이 천편일률적인 스토리와 지나친 다작, 대차명(代借名) 작품을 남발하면서 80년대 후반이 되자 한국 무협계는 급격히 무너졌다. 그러한 상황을 반전시킨 작가가 용대운이다. 그의 1993년 작 『태극문(太極門)』은 ‘인간무협’ 즉, ‘무협도 어차피 인간이 사는 세계이니 인간을 제대로 그려보자’는 그의 취지는 이후 ‘신무협’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이끌어냈다. ‘신무협’이 80년대의 ‘구무협’과 확연히 다른 점은 일수에 하늘을 뒤집고 땅을 가르며 불과십년만에 몇십 몇백 갑자의 내공을 쌓아 수천 명, 수만 명의 적을 무찌르곤 하던 ‘천마대제’ 류의 고수들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몰락한 명문세가의 자식이 아닌 평범한 무사나 농부가 주인공이 되고, 박투 장면은 보다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묘사로 마치 ‘진짜’처럼 느껴진다. 특히 좌백의 『대도오(大刀傲)』나『혈기린외전(血麒麟外傳) 』은 무협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듣는다. 하지만 ‘사람 냄새’가 아무리 진하게 풍겨도, 무협은 판타지다. 책을 덮으면, 시산혈해를 건너 막 일검으로 원수의 목을 날리려던 주인공도 어쩔 수 없이 복수를 미뤄야 하고, 독자는 황사 먼지 날리는 거리로 다시 일을 하러 나가야 할 것이다. 일상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충족시켜 준다는 매력으로 조만간 다시 책을 펼칠 테지만. 마치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가 몸을 단련하여 복수하는 장면이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엄정화가 저지르는 외도가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판타지이듯.
<사진1> 말죽거리 잔혹사 아무튼, 무협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루의 이야기꾼 노인처럼 수다스러운 유하의 시집이 나온 게 88년인가 89년인가? 아마도 ‘광두일귀’가 물 같은 친구 믿고 맹주 자리 물려준 뒤에 한창 깨지고 있던 무렵인가 보다. 영화를 통해서도 드러나지만, 유하가 느끼고 겪었던 7-80년대의 한국사회는 이소룡의 영화나 무협지의 도산검림 속에서나 있을 법한 깊고 어두운 폭력의 시대였다. “어제는 백 명 죽이고, 오늘은 이백 명 죽이고…”. 거짓말 같은 그런 일이 ‘진짜로’ 일어났던 시대. 어떤 식으로든 작가는, 당대, 지금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2. 그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는가? “나는 그 해를 시간 지나도 그대로 생생한 몇 가지 일로 기억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인구 몇 만의 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면 지금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까? 그때 나는 부산에 가 살고 있었다. 집에서 오륙 분 정도만 걸으면 나는 언제나 바닷가에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 해의 여름 해수욕장이 울상짓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탈의장에 손님이 없었고, 여관은 텅텅 비었다. 그 해엔 섬 하나를 제외한 전국에 1년 내내 비상계엄령이 내려져 있었다. 몇 개의 큰 사건을 겪으며, 모두 움추러들었는가? 나는 생각했었다. 모두 충격받고 타격받았는가? 그럴 리가 없었다. 어느날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알아버렸다. 두 개의 관광호텔은 만원이었다. 선이 너무 분명하게 그어져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두 개의 관광호텔과 작은 여관 중간쯤에 드는, 그래서 완충지대가 되어야 할 곳의 오래된 호텔 하나는 있으나마나한 존재였다. 내가 보기에 많은 시민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으며 훎쩍 집을 떠나 큰 관광호텔을 메울 수 있었던 선택받은 층과, 짜증나는 여름이 되어도 집을 지키며 그들이 이용할 여관이나 민박업소 그리고 갖가지 색칠을 해 놓은 탈의장 따위의 부대시설을 비워 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땅 다수의 시민들 사이에서 두 세계의 감정충돌을 막아줄 부드러운 스폰지 같은 존재는 그때에도 없었다.”-조세희, 『침묵의 뿌리』16-18쪽, 1985, 열화당 1965년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고서도 `소설가로서의 한계를 느껴` 창작활동을 중단한 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조세희는 유신체제의 절정기이던 1975년, 돌연 다시 펜을 들고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연작을 시작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긴급하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그려낸 소설에 환상적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계급적인 대립과 갈등이 마치 비논리의 세계나 동화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그 결과 현실의 냉혹함은 더욱 강조된다. 그는 80년대에 들어와 바로 10년 전 그 생각에 사로잡혀 또 한 권의 책을 썼는데, 그것이 사진-산문집인 『침묵의 뿌리』다. 그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동안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북사태가 일어났을 때, 그는 사진 찍는 친구들에게 제발 그 기록을 남기라고 쫓아다니며 부탁했다. 아무도 그의 말을 안 듣자 홧김에 카메라를 한대 사 들고 필름을 끼운 뒤 현장으로 들어갔다. 오랜 시간 침묵해 오던 작가에게 펜과 사진기를 들게 한 것은 무엇이었나? 그때 그는 사북에서 어린이들이 쓴 글을 읽고 몇 번이나 목이 메었다고 했다. 셋방살이에서 발전한 우리집 우리가 사북으로 이사왔을 떄는 셋방살이를 하였다. 나는 우리집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때 우리가 살던 셋방 주인집에는 국민학생이 있었는데 나하고 사이좋게 놀다가도 싸우면은 그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저 셋방살이를 하는 주제에”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 우리집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버지께서 열심히 돈을 모아 이제는 우리집이 생겼다. 우리집이 생겨서 남에게 방을 세주고 있기까지 했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고 셋방살이하는 그 집을 잘해준다.-6학년 이효명 우리집 우리집은 방이 너무 좁다. 그래서 나는 잠을 편하게 못 잔다. 그리고 내 동생이 한 명 있는데, 내 동생은 잠을 아주 이상하게 잔다. 내 배에다가 다리를 올려놓거나 아니면 우리 엄마 가슴 위에서 엎드려 잔다. 그래서 나는 아빠보고 방이 넓은 데로 이사를 가자고 그러면, 아빠는 자꾸 1년만 더 살고 가자고 하신다. 엄마한테도 그러면 엄마는 또 아빠하고 다르다. 엄마는 3년만 더 살고 가자고 하신다.-2학년 정혜영 불쌍한 우리 학교 …어느날 공부를 하고 있는데 교실 밑바닥에서 쿵쿵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며칠이 지나고 우리 학교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금이 가고 내려앉는 학교가 위험하고 공부를 할 수가 없어서 뒷산에다 소나무를 베내고 거기다가 천막을 치고 공부를 했어요… 왜 우리학교가 이렇게 되었나 하면, 석탄을 많이 캐내기 위해 학교 밑까지 굴을 파들어갔기 때문이지요.-5학년 이진희 조세희의 사진 속에서 본 사북에서 광부들이 거주했던 사택촌은 마치 집단수용소를 연상케 한다. 일자형 연립주택이 100~200동씩 집단취락을 형성했는데, 한동에는 5가구가 들어 있고, 가구당 면적은 5~6평 정도로 방 2개에 부엌 1칸이 딸려 있다. 화장실은 30~40세대씩 불결한 공동변소를 사용했고, 수도도 공동수도로 심지어 시간제 급수를 하고 있었다. 세대마다 한 장의 시멘트 벽돌벽으로 나뉘어지고 천장도 얇은 합판으로 이어져 전혀 방음도 안되었지만 그나마 입주한 사람은 전체 광부의 45% 정도로 나머지는 대부분 단칸셋방 신세였다고 한다.
1984년에 조세희가 사북에서 보고, 찍어온 것들은 대도시의 이른바 신중산계층 시민들이 이미 손 흔들어 작별했다고 믿는 30년 전 것, 즉 50년대의 풍경을 그대로 되돌려다 놓은 것 같았다. 그것은 과연 누구의 죄였을까? 조세희가 책 마지막에서 인용한 야스퍼스의 말을 재인용하겠다. “인간다운 인간들 사이에는 깊은 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개인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일과 불의, 특히 그 앞에서 또는 그가 알고 있는 가운데 저질러지는 범죄 행위들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들을 저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때 나는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같이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3. 같은 시간, 또다른 세상 조세희의 침묵과 그 뿌리가 이토록 선연한 핏빛이었다면, 1992년 12월에 있었던 4.3그룹의 전시회에서 우리가 읽었던 ‘침묵’의 빛깔은 무엇이었을까? 4.3그룹은 학연, 지연을 초월하여 해방 후 세대인 60번대 학번의 30~40대 건축가가 모인 모임이었다.(곽재환, 김병윤, 김인철, 도창환, 동정근, 민현식, 방철린, 백문기, 승효상, 우경국, 이성관, 이일훈, 이종상, 조성룡 등 14인)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이라는 주제 하에 이루어진 전시와 심포지엄 행사에 대해 건축가 김진애는 이렇게 평가한다.
“건축에 대한 사랑, 사회에 대한 건축가의 책임, 현상에 대한 건축가의 비판적 실무, 걱정과 우려의 말 대신 실천과 행동의 필요성을 확인케 해 준 이벤트로서, 이번 4.3그룹전은 아무리 그 의의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4.3그룹전: 침묵에서 공명으로>, 김진애, 월간 plus 9301 그러나 여기에 의문이 있다. 즉, 4.3이라는 그룹이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이라는 테제를 던졌으면, 그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고 우리의 건축의 향방에 대한 가늠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목소리, 적어도 공통된 톤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김진애가 보기에 참여 건축가들은 문제의식은 공유하되, 그 문제의 ‘실체’에 대한 의식은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14개의 주제가 펼쳐지고 있지만 그것이 도대체 어떠한 문제로부터 출발한 주제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하다.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자칫 전시내용에 대한 과기대를 하게 만들고 과대포장하기도 하고 참여 건축가들을 과도히 긴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김진애는 주제모음전이라기 보다는 소재모음전으로 보이는 이들 전시작품들의 뿌리는 건축의 체험적 감수성, 즉 빛과 소리와 자연과 풍경, 촉감과 지각을 연출하려는 욕구에 있고, 이를 통해 인간의 무한한 체험 영역을 넓히려 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줄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본다. “첫째는 ‘도시건축상황’이다. 조성룡의 ‘도시의 풍경’, 백문기의 ‘미로’, 이종상의 ‘백문의 건축’, 이성관의 ‘지상43m의 가상’,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그중 이문 291작품) 등이다. 두번째 줄기는 ‘지역적 감성건축’으로서 소위 한국성이 스며든 건축성의 탐구 갈래이다. 우경국의 ‘관계항’, 방철린의 ‘동자이의’, 곽재환의 ‘귀.탈’, 민현식의 ‘비움:마당 깊은 집’, 승효상의 수졸당 작품, 김인철의 ‘초공간’이 그것이다. 세번째는 ‘메타개념건축’이다. 도각의 ‘파동의 각’, 김병윤의 ‘건축적 탐구’, 동정근의 ‘상징체계를 찾아서’, 이일훈의 ‘성,속,도’는 메타 개념의 활용가능성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열매에 대해 도시 상황에 대한 대응은 침묵의 저항으로 일관된 것으로 보이며, 지역성에 대한 어휘는 풍부해져 있으나 공간 또는 장소의 어휘로 정의되지 않고 있다고 보았다. 메타개념에 대해서도 객관화된 설득력을 지니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연대가 서양력상의 세기말이기 때문에 19세기말의 서구의 상황과 오늘 한국사회가 당면한 시기의 상황이 유사하다고 규정한다면 이것은 과장된 유추에 지나지 않는다. … 단지 오늘 한국땅의 건축적 상황이 지난 세기말 근대건축이 태동하던 서구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고 판단이 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혀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야 했다.”-<시대정신이라는 이름의 지푸라기> 이정근, 건축사 9302 이정근 또한 건축에서의 ‘시대정신’이란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건축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가상적인 사회의 시대정신이란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건축인으로서 오늘의 문제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하는 철저하고 냉철한 스스로의 깨달음이 앞서야 하며, 각 건축인들의 깨달음이 건축행위라는 실천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경향이 다음시기에까지도 유효한 건축행위의 지침을 형성하였을 때 후세의 사람들이 이십세기 말에는 어떠한 경향이 있었고 그 시대를 특정지우는 어떤 시대정신이 있었다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4.3그룹전이 제기한 우리의 건축적 현실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는데, 그것을 성하는 세 요소는 건축환경에 있어 인공과 자연, 전체와 개체 및 기존과 새것의 상호 연관작용에 관한 문제이다. 그것은 첫째, 오늘날 우리 삶터의 풍경은 날로 자연의 영역을 무화시키는 인공화의 길로 치닫고 있고, 둘째, 건축행위의 대상을 하나의 개체로서의 인공물을 생산해 내는 데 관심을 집중시켜왔기 때문에 도시건축이라는 개념보다 더 근원적인 개념으로서의 개체와 전체의 관계가 실종되어 가고 있으며, 셋째, 오늘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축행위는 시간과 공간의 추상적인 이해에서 맴돌고 있을 뿐 우리의 삶과 긴결된 축적된 시간의 흔적과 장소성을 말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도덕성의 문제까지. 4. 시대정신이라는 이름의 지푸라기 이러한 의견에 대하여 4.3그룹의 일원인 민현식은 <건축비평의 현장-그 논의의 계속을 위하여>(건축사 9303)를 통해 참가작가로서의 입장을 밝힌다. 먼저 그는 주제와 관련하여 “세기말” 그리고 “시대정신”의 뜻에 관하여 그 진의 가 와전되었음을 해명하고자 한다. “세기말이란 태양력상의 100년 단위 끝이 아니라, 어느 한 사회, 한 시대를 주도해오던 지배논리 또는 사상체계가 이제 더 이상 그 사회와 시대의 현재적 현상들을 명쾌히 설명할 수 없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소위 세기말이라 부른다. 다시 말하면, 그것이 발전이든 퇴행이든 간에, 모든 것은 지속적으로 변하기 마련이고, 그 시대의 논리가 그 시대의 변화를 더 이상 감당하거나 수용할 수 없게 된 상황을 일컫는다. 따라서 기존의 모든 가치체계는 거의 동시에 심각히 도전받게 되고, 가치의 척도가 혼란된 상태에서 사회는 반역의 시대로 돌변하며, 말초적 유희나 퇴폐적 허무주의가 성행하는 예술은 그 근본뜻을 잃어가며, 성(性)을 유희의 도구로 일삼게 되는 도덕성의 파괴 등으로 인간성은 극도로 피폐해가는 소위 세기말적 증후를 보이게 된다. 대표적으로 로마제국 말기가 그러했고, 그리고 19세기말의 유럽사회가 그러했다.” 민현식은 “이러한 세기말적 혼돈의 시대에 나타나는 현상·증후들은 지극히 부정적이기는 하나 또다른 관점으로 새로운 시대를 향한 새로운 정신의 태동을 뜻하는 역설적 희망의 때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로마제국의 말기현상은 기독교라는 새로운 정신으로 극복되었고, 19세기말기 증후는 모더니즘으로 극복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기말”이란 용어를 차용한 뜻은 오히려 “오늘 우리의 건축가가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오늘 우리 건축인들은 어디서 어떻게 서있는가를 거듭 되묻기” 위해서라고 강변한다. “ … 19세기말 오토 바그너, 구스타프 클림트, 오셉 호프만, 헤르만 오브리스트 등이 주도한 비인의 세쎄션 운동은, 유럽 각처의 유사한 예술운동과 함께 , 세기말적 허구로 뒤덮인 비인의 문화에 대한 도발적 반동으로 이해된다. 인간과 예술에 대한 본원적 의미탐구는 외면한 채 피상적 유희, 허구의 조작만을 일삼던 당시의 예술가들에게 「우리는 너희들과는 다르다」라고 아우성친 운동이다. 그들의 예술운동은은 의미 없는 예술에 대한 경종이므로 그들 작품의 형태적 특성 즉 세쎄션 양식 등을 운운하는 것은 호사를 일삼는 건축사가들의 학문적 성과로서는 가치가 있을 터이나, 그들의 외침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구체적 형태의 양상에서 읽히는 진실에 접근하려는 그들의 태도, 그들의 선언적 진실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민현식은 단지 “시대정신”이 허구를 본연으로 회복하려는 의지로 해석하여 이 시대에 대립하겠다는 전위적 정신을 바탕으로 각각의 관심사를 내보인 것이지 자신들의 주장을 영원불변하는 어떤 진리로 강변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정근의 지적에 대하여 첫째, 자연과 인공과의 관계정립)에 대해서는 곽재환, 이종상, 방철린, 김인철, 승효상, 우경국의 작업을 예로 들어 자세히 설명한다. 두번째, 개체와 전체와의 조화에 대해서는 조성룡, 백문기, 승효상의 작업으로, 세번째 도시성에 대해서는 김병윤, 도창환, 동정근, 이일훈, 이성관 등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며 반박한다. 특히 그는 우리의 도시환경이 조잡한 괴성과 소란스러움으로 가득차 있다고 진단하고, 이러한 현실에 지금은 침묵으로서 대립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사진6>알바로 시자의 수영장, 『빈자의 미학』50쪽
또한 이러한 침묵, 절제, 비움 등의 용어를 사용한 주장에 대하여 많은 비평가들은 이 용어들이 함축하고 있는 부정적 의미를 직선적으로 연계시켜서 이 시대의 리얼리티를 직시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폐, 자괴, 허무, 현실도피, 초월, 도사연함, 비현실적, 소극적 자기만족의 몸짓으로만 보려 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음도 인정한다. “이 시대, 우리의 건축상황을 깊이 반성한다면 진리는 커녕 진실과 사실에 대한 관심조차 우습게 보는 사조들이 최신의 매력으로 떠들어대며 동시에 일정한 독립성과 그 나름의 고유한 의미를 지니는 창작품 내지 예술품의 개념도 한물간 생각으로 치부되며,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탈근대주의 텍스트의 이름으로 제기되는 설익은 외국이론들이 무분별하게 수용되며, 한편 전통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국수적 패권주의 건축에 즉 건축을 외면한 건축들의 시끄러움에 오히려 더 강한 발언일 수도 있는 침묵으로 대립하고자 함이지 인간의 삶에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공명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그런 “너의 침묵에 나의 입술은 메마를 뿐이다.” 이들이 침묵하고자 하는 대상인 도시 건축, 설익은 외국이론이나 건축을 외면한 시끄러운 건축들이란 처음 제기한 문제의식인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의 어디쯤을 가로막은, 얼마나 높게 서있는 벽이었는지? 세기말, 시대정신을 들먹이며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던 20세기 끝자락의 먹먹한 침묵 속에서, 그들은 서로 전음입밀의 수법으로 실은 ‘우리는 너희들과는 다르다’는 속삭임을 주고 받은 것은 아닌가? 김진애의 지적처럼, “4.3그룹이 아직 머물러 있는 긴장과 대립, 관찰과 관조, 자괴와 자기부정이라는 것은 오직 시작에 불과하다. 이완과 공존, 참여와 투쟁, 포용과 긍정에 이르는, 결코 침묵의 세계(silence)가 아니라 공명의 세계(resonance)로 향하는 문을 두드리는 시작일 뿐”이었다. 그리고 십여 년이 훌쩍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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